[Project Description]_Song Kwang Chan + Daniel Kyong
Title_ Garden Eel Lives The Black City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람들과의 연결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오늘날이 사람들은 과거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과 더불어 존중과 애정과 활기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의 표시는 구성원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살람 알라이쿰’이라고 인사하고, 히브리어의 인사말은 ‘샬롬’이다. 영어 peace은 평등 해서 어느 누구도 상대를 지배하거나 공격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때 평화가 깃든다는 뜻이다. 흰두교의 인사말 나마스테는 ‘당신 앞에 절합니다.’라는 말로, 내가 당신보다 나을 것이 없고, 우리는 모두 삶의 정신과 신성한 불꽃을 품은 평등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문명이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러 종족과 언어를 지배하던 막강한 제국도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사하고 절하면서, 그 친밀함의 연결을 놓치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연결은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만이,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람들과의 연결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오늘날이 사람들은 과거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과 더불어 존중과 애정과 활기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의 표시는 구성원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살람 알라이쿰’이라고 인사하고, 히브리어의 인사말은 ‘샬롬’이다. 영어 peace은 평등 해서 어느 누구도 상대를 지배하거나 공격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때 평화가 깃든다는 뜻이다. 흰두교의 인사말 나마스테는 ‘당신 앞에 절합니다.’라는 말로, 내가 당신보다 나을 것이 없고, 우리는 모두 삶의 정신과 신성한 불꽃을 품은 평등한 인간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문명이 먼지만 남기고 사라졌다. 여러 종족과 언어를 지배하던 막강한 제국도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에게 인사하고 절하면서, 그 친밀함의 연결을 놓치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연결은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만이,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Garden Eel (정원 장어)의 이상(꿈)_ polymer clay, epoxy, acrylic board_180x15x30cm(variable installation)_2019

Ideal (dream) of Garden Eel_ polymer clay, epoxy, acrylic board_180x15x30cm(variable variable installation)_2019
[Song+Kyong’s story]
정원 장어의 춤
The Dance of Garden Eels
정원 장어들은 혜성에 살고 있습니다. 정원 장어들은 혜성의 작은 구멍마다 꼬리를 넣고서 머리와 몸을 검은 우주로 길게 뺍니다. 정원 장어들은 서로를 덩굴처럼 감싸며 속닥거리고, 혜성이 항해하는 길을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배가 고프면 우주에 흐르는 별빛을 먹습니다. 혜성은 정원 장어들이 온전히 소통하며 살아가는 정원입니다.
어느 날 혜성이 푸른 항성으로 추락했습니다. 혜성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깊은 바다로 잠겨들었습니다. 구멍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정원 장어들이 머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눈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텅 빈 도시가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정원 장어들에게 투명한 문어들이 다가왔습니다.
“이곳은 어디죠?”
“Where are we?”
“두려워 말고 나와요. 여긴 우리가 살고 있고, 당신들이 살아갈 곳이에요.”
눈부신 도시에 매혹된 정원 장어들은 저마다 건물 창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정원 장어들은 도시 곳곳에 흘러넘치는 온갖 색을 먹어치웠습니다. 색을 먹는 순간의 황홀한 기쁨에 취해서 춤을 출 틈이 없었습니다. 정원 장어들의 몸은 점점 화려해졌고, 도시는 점점 색을 잃어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도시의 모든 색이 사라졌습니다. 색을 벗은 검은 도시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화려한 색을 입은 정원 장어들은 문득 검은 우주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속삭이던 날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이제 정원 장어들은 침묵의 전쟁을 벌입니다.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내면의 전쟁입니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정원을 갈망하면서도, 정원 장어들은 끝내 도시를 떠나지 못합니다. 색을 벗지도 못합니다.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다가오는 이들이 두렵고 때로 거추장스럽습니다.
정원 장어들이 한데 모여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서로에게 다가설 듯 다가서지 못하며 외로운 춤을 춥니다.
정원 장어의 춤
The Dance of Garden Eels
정원 장어들은 혜성에 살고 있습니다. 정원 장어들은 혜성의 작은 구멍마다 꼬리를 넣고서 머리와 몸을 검은 우주로 길게 뺍니다. 정원 장어들은 서로를 덩굴처럼 감싸며 속닥거리고, 혜성이 항해하는 길을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배가 고프면 우주에 흐르는 별빛을 먹습니다. 혜성은 정원 장어들이 온전히 소통하며 살아가는 정원입니다.
어느 날 혜성이 푸른 항성으로 추락했습니다. 혜성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깊은 바다로 잠겨들었습니다. 구멍에 숨어 오들오들 떨고 있던 정원 장어들이 머리를 내밀어 보았습니다.
눈앞에 반짝반짝 빛나는 텅 빈 도시가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정원 장어들에게 투명한 문어들이 다가왔습니다.
“이곳은 어디죠?”
“Where are we?”
“두려워 말고 나와요. 여긴 우리가 살고 있고, 당신들이 살아갈 곳이에요.”
눈부신 도시에 매혹된 정원 장어들은 저마다 건물 창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정원 장어들은 도시 곳곳에 흘러넘치는 온갖 색을 먹어치웠습니다. 색을 먹는 순간의 황홀한 기쁨에 취해서 춤을 출 틈이 없었습니다. 정원 장어들의 몸은 점점 화려해졌고, 도시는 점점 색을 잃어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도시의 모든 색이 사라졌습니다. 색을 벗은 검은 도시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화려한 색을 입은 정원 장어들은 문득 검은 우주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속삭이던 날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이제 정원 장어들은 침묵의 전쟁을 벌입니다.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내면의 전쟁입니다. 마음을 주고받으며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정원을 갈망하면서도, 정원 장어들은 끝내 도시를 떠나지 못합니다. 색을 벗지도 못합니다.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다가오는 이들이 두렵고 때로 거추장스럽습니다.
정원 장어들이 한데 모여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서로에게 다가설 듯 다가서지 못하며 외로운 춤을 춥니다.

Black City with Octopus IV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60*45 cm_2019

Black City with Octopus III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60*45 cm_2019

The Black City with Octopus I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60*45 cm_2019

Black City with Octopus V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60*45 cm_2019

The Black City with Octopus II (Chicago, USA)__Digital Pigment Print_60*45 cm_2019
Contents_
1. 침묵의 전쟁 / Black City
왜 많은 사람이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하고 반쯤 죽은 상태라고 느낄까.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인간을 정서적으로 충분히 지지해주지 못한다. 여전히 존중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그저 절반만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법이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근사 하겠지만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따라서 존중 받고 이해 받고 싶은 욕구가 헌법상의 권리보다 중요할지 모른다. 모두가 동등하게 한 표씩 나눠가지고 모든 차별이 철폐된다면 물론 만족스럽겠지만 탐욕과 악의와 시기와 자만이 평등의 기쁨을 앗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평등은 점차 막연한 신기루처럼 보일 테고 정작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은 애정일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나이를 먹을 때 박애정신에서 도움을 받을 거라고 믿는다면 위안이 되긴 하지만, 그런 도움이 사무적이고 인색하고 마지못해 주어지고 또 그런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다 보면 점차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남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주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고 남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남에게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온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갈망하게 된다.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은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아무 소리없이 매일매일 치열하게 일어나는 이 전쟁을 ‘침묵의 전쟁’이라 부른다.
1. 침묵의 전쟁 / Black City
왜 많은 사람이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하고 반쯤 죽은 상태라고 느낄까.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인간을 정서적으로 충분히 지지해주지 못한다. 여전히 존중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그저 절반만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법이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근사 하겠지만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의 행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따라서 존중 받고 이해 받고 싶은 욕구가 헌법상의 권리보다 중요할지 모른다. 모두가 동등하게 한 표씩 나눠가지고 모든 차별이 철폐된다면 물론 만족스럽겠지만 탐욕과 악의와 시기와 자만이 평등의 기쁨을 앗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평등은 점차 막연한 신기루처럼 보일 테고 정작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은 애정일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나이를 먹을 때 박애정신에서 도움을 받을 거라고 믿는다면 위안이 되긴 하지만, 그런 도움이 사무적이고 인색하고 마지못해 주어지고 또 그런 도움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다 보면 점차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남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주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고 남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남에게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온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갈망하게 된다.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은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고, 아무 소리없이 매일매일 치열하게 일어나는 이 전쟁을 ‘침묵의 전쟁’이라 부른다.
2. Garden Eel (정원 장어)의 이상(꿈)
깊은 바다 속 Black City는 Garden Eel (정원 장어) 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 도시에서 오색찬란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도시의 화려함을 흡수해 버린 장어들은 도시 전체가 Black으로 변하게 되고 난 뒤,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침묵의 전쟁’ 벌이게 된다. 다시 말해,자신을 꾸민 온갖 화려함을 벗어 버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친밀함과 정직 함으로 다가서기 위한 내면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한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떨쳐 내지도, 검게 변한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다. Garden Eel는 그저 꿈 같이 여겨지는 이상을 이룰 수는 없다고 해도 고상한 이상을 간직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끊임없이 이상을 배반하면서도 이상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은 양심을 달래준다. 사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자주 주장하지만 그만큼 이상에 헌신하지 않는다. 이들 같이 인간도 큰 갈등없이 이상을 저버릴 때가 많다.
깊은 바다 속 Black City는 Garden Eel (정원 장어) 가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 도시에서 오색찬란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도시의 화려함을 흡수해 버린 장어들은 도시 전체가 Black으로 변하게 되고 난 뒤, 온전히 살아있기를 바라는 갈망으로 ‘침묵의 전쟁’ 벌이게 된다. 다시 말해,자신을 꾸민 온갖 화려함을 벗어 버리고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친밀함과 정직 함으로 다가서기 위한 내면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한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떨쳐 내지도, 검게 변한 도시를 떠나지도 못한다. Garden Eel는 그저 꿈 같이 여겨지는 이상을 이룰 수는 없다고 해도 고상한 이상을 간직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끊임없이 이상을 배반하면서도 이상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이상은 양심을 달래준다. 사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자주 주장하지만 그만큼 이상에 헌신하지 않는다. 이들 같이 인간도 큰 갈등없이 이상을 저버릴 때가 많다.
3. Close and Personal Relationship_친밀하고 사적인 관계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도가 수없이 좌절된 이유는 개인에게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부추기지만 개인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와 경쟁이 크게 증가하고, 소수 집단은 옆으로 밀려난 채 인정해 달라고 외치지만 자유 그 자체는 이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충분히 존중 받고 온전히 이해 받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세상이 붙여준 꼬리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누군가에 관한 진실을 아는 길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고, 사람들은 존경할 만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위장을 많이 하고, 정부와 기업에서 말하는 거짓말과 절반의 진실이 난무하고, 홍보를 가장한 허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은 무력감보다는 오해 받는 데서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만이 한 개인이 겉으로 드러난 캐리커처만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데도,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폄하되고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충돌하지 않고 협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이 황량한 Black City에서 우리의 이상을 기억하면서, 우리와 당신 사이의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공생과 위로의 감각을 찾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도가 수없이 좌절된 이유는 개인에게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부추기지만 개인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불일치와 경쟁이 크게 증가하고, 소수 집단은 옆으로 밀려난 채 인정해 달라고 외치지만 자유 그 자체는 이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충분히 존중 받고 온전히 이해 받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세상이 붙여준 꼬리표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 누군가에 관한 진실을 아는 길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고, 사람들은 존경할 만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위장을 많이 하고, 정부와 기업에서 말하는 거짓말과 절반의 진실이 난무하고, 홍보를 가장한 허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은 무력감보다는 오해 받는 데서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만이 한 개인이 겉으로 드러난 캐리커처만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데도,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폄하되고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충돌하지 않고 협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이 황량한 Black City에서 우리의 이상을 기억하면서, 우리와 당신 사이의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공생과 위로의 감각을 찾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시간이다

The Black City_침묵의 전쟁 III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90*150 cm_2019

The Black City_ Silent War I (Chicago, USA)_ Digital Pigment Print_84x106cm_2019

The Black City_침묵의 전쟁 II (Chicago, USA)_Digital Pigment Print_84x106cm_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