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단종의 유배와 죽음이 깃든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그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거나 설명하기보다, 시간을 함께 견뎌온 생명체를 통해 그 기억을 마주하고자 했다.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랜 세월을 뿌리내리고 살아온 나무들에게로 향했다. 단종이 영월에 머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 년 전이다. 그 시간은 인간에게는 역사로 남지만, 어떤 생명에게는 살아 있는 현재로 이어져 있다. 나는 영월 지역에 남아 있는 보호수들, 그중에서도 2종의 천연기념물과 13그루의 군보호수에 주목했다. 이 나무들은 단종의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살아온 ‘살아 있는 역사’이자, 말 없는 목격자다. 이번 작업은 이러한 나무들을 하나의 기억의 매개체로 삼아,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인간의 서사로 좁히지 않고, 오히려 그를 둘러싼 풍경과 생명들,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통해 다시 바라보려 했다. 사진은 이 나무들을 단지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표면의 주름과 결, 빛이 스며드는 틈, 가지의 꺾임에서 시간의 압력과 역사적 진동을 느끼고자 했다. 이 작업은 ‘나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감각하는 방식으로서의 시선이기도 하다. 역사는 때로 텍스트보다 풍경 속에 더 깊이 잠들어 있다. 영월의 오래된 나무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은 지나갔지만, 그 기억은 살아 있는 생명과 함께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고.
















